소위 말하는 석궁 테러사건... 2007년 1월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런 철지난 떡밥 을 왜 지금 다시 꺼내물었냐 하면 바로 3월 14일에 이 사건의 항소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5일 피디수첩에서도 이 내용을 다루었기 떄문에 급관심이 생겨서 때늦은 조사를 했다.
사건경위
1. 김명호 전 교수 대학 재임용 탈락.
2. 소송 제기.
3. 패소.
4. 항소.
5. 패소.
6. 항소심 재판장의 집 근처에 잠복해 있다가 석궁으로 상해 입힘.
7.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
8. 징역형 선고.
그리고 아래는 석궁 피습 사건의 발단이 된 사건 부터의 일을 나열한 사건일지.
사건일지
1995년 1월: 김명호 성균관대 수학과 죠교수, 본고사 문제의 수학적 오류를 지적하고 전원 만점처리해야 한다고 주장.
1995년 10월: 부교수 승진 탈락. 부교수 직위 확인 소송 제기.
1995년 12월: 징계위원회에 회부됨. 정직 3개월.
1996년 2월: '해교 행위', '논문 부적격'이라는 이유로 재임용 거부됨.
1997년: 재판에서 패소. 항소 기각됨. 이후 미국과 뉴질랜드에서 무보수 연구교수로 활동.
세계 수학계에 위의 사건이 알려져 한국 수학, 과학계 국제망신.
2005년 3월: 김명호 전 교수 귀국, 교수 직위 확인 소송 제기.
2005년 8월: 김명호 전 교수, 법원 청사 앞에서 1인 시위 시작.
2005년 9월: 일심 패소.
2006년 5월: 김명호 전 교수, 1인시위를 해오다 명예회손 혐의로 기소됨.
2007년 1월 12일: 항소심 패소.
2007년 1월 15일: '석궁 피습 사건' 발생. 김명호 전 교수 살인미수로 체포. 14일 까지 1인시위를 계속했음.
2007년 1월 17일: 김명호 전 교수 구속수감. 단식투쟁.
2007년 4월 16일: 김명호 전 교수, 법정모독 발언으로 7일 감치.
2007년 10월 15일: 김명호 전 교수에게 징역 4년의 중형 선고.
2008년 3월 14일: 항소심 결과 징역 여전히 징역 4년.
2008년 3월 25일: MBC 피디수첩 -석궁테러 미스테리 방송.
현재 2008년 3월 27일.
깔끔하게 정리해 보자면...
1. 본고사 문제의 오류를 발견해 지적.
2. 체면 구긴 대학이 재임용 거부함.
3. 소송을 제기했으나 줄줄이 패소.
4. 줄 패소에 낙심해 판사 집에 찾아가 피습.
5. 징역형 선고.
요렇게 정리되고
석궁피습 사건에서 이상한점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1. 사라진 화살
검찰이 제시한 화살들에는 피해자와 증인의 증언과 일치하는 화살이 없음. 일명 사라진 화살 미스터리 이며 그 화살은 아마 김전일이 할아버지가 와도 못찾을 것임.
2. 혈흔이 없는 와이셔츠
놀랍게도 속옷, 내복, 조끼에는 복부에 혈흔이 있었지만, 중간에 끼워입는 와이셔츠에만 복부에 혈흔이 없었다. 일명 사라진 핏자국 미스터리. 피해자 측에서는 "보기가 싫어서 빨았다."라고 했으나 그렇다면 와이셔츠 팔 부분에만 묻어있는 핏자국을 설명할 길이 없으며 옷의 피가 피해자 본인의 것인지 감정되지 않음. 요 부분에서 증거조작설이 나오게 됨.
3. 점점 커지는 상처
말 그대로 상처가 점점 커짐. 0.5cm -> 0.8cm -> 2.0cm로 크기 변화. 일명 커지는 상처 미스터리;;
- 관련 링크들
석궁테러사건 당시 기사
http://media.daum.net/society/affair/view.html
성균관대 본고사 관련기사
http://www.unn.net/News/detail.asp?nsCode=36949
석궁 피습 사건에 대한 의혹 관련기사
http://www.nakorean.com/news/articleView.html?idxno=6146
석궁사건 종결심 관련 내용 포스팅
http://mediamob.co.kr/2bsicokr/frmView.aspx?id=197910
조사는 이정도 까지이고 깔끔하게 김명호 전 교수님의 1인시위 하던 시절 사진으로 마무리.
끝.
사건경위
1. 김명호 전 교수 대학 재임용 탈락.
2. 소송 제기.
3. 패소.
4. 항소.
5. 패소.
6. 항소심 재판장의 집 근처에 잠복해 있다가 석궁으로 상해 입힘.
7.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
8. 징역형 선고.
그리고 아래는 석궁 피습 사건의 발단이 된 사건 부터의 일을 나열한 사건일지.
사건일지
1995년 1월: 김명호 성균관대 수학과 죠교수, 본고사 문제의 수학적 오류를 지적하고 전원 만점처리해야 한다고 주장.
1995년 10월: 부교수 승진 탈락. 부교수 직위 확인 소송 제기.
1995년 12월: 징계위원회에 회부됨. 정직 3개월.
1996년 2월: '해교 행위', '논문 부적격'이라는 이유로 재임용 거부됨.
1997년: 재판에서 패소. 항소 기각됨. 이후 미국과 뉴질랜드에서 무보수 연구교수로 활동.
세계 수학계에 위의 사건이 알려져 한국 수학, 과학계 국제망신.
2005년 3월: 김명호 전 교수 귀국, 교수 직위 확인 소송 제기.
2005년 8월: 김명호 전 교수, 법원 청사 앞에서 1인 시위 시작.
2005년 9월: 일심 패소.
2006년 5월: 김명호 전 교수, 1인시위를 해오다 명예회손 혐의로 기소됨.
2007년 1월 12일: 항소심 패소.
2007년 1월 15일: '석궁 피습 사건' 발생. 김명호 전 교수 살인미수로 체포. 14일 까지 1인시위를 계속했음.
2007년 1월 17일: 김명호 전 교수 구속수감. 단식투쟁.
2007년 4월 16일: 김명호 전 교수, 법정모독 발언으로 7일 감치.
2007년 10월 15일: 김명호 전 교수에게 징역 4년의 중형 선고.
2008년 3월 14일: 항소심 결과 징역 여전히 징역 4년.
2008년 3월 25일: MBC 피디수첩 -석궁테러 미스테리 방송.
현재 2008년 3월 27일.
깔끔하게 정리해 보자면...
1. 본고사 문제의 오류를 발견해 지적.
2. 체면 구긴 대학이 재임용 거부함.
3. 소송을 제기했으나 줄줄이 패소.
4. 줄 패소에 낙심해 판사 집에 찾아가 피습.
5. 징역형 선고.
요렇게 정리되고
석궁피습 사건에서 이상한점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1. 사라진 화살
검찰이 제시한 화살들에는 피해자와 증인의 증언과 일치하는 화살이 없음. 일명 사라진 화살 미스터리 이며 그 화살은 아마 김전일이 할아버지가 와도 못찾을 것임.
2. 혈흔이 없는 와이셔츠
놀랍게도 속옷, 내복, 조끼에는 복부에 혈흔이 있었지만, 중간에 끼워입는 와이셔츠에만 복부에 혈흔이 없었다. 일명 사라진 핏자국 미스터리. 피해자 측에서는 "보기가 싫어서 빨았다."라고 했으나 그렇다면 와이셔츠 팔 부분에만 묻어있는 핏자국을 설명할 길이 없으며 옷의 피가 피해자 본인의 것인지 감정되지 않음. 요 부분에서 증거조작설이 나오게 됨.
3. 점점 커지는 상처
말 그대로 상처가 점점 커짐. 0.5cm -> 0.8cm -> 2.0cm로 크기 변화. 일명 커지는 상처 미스터리;;
- 관련 링크들
석궁테러사건 당시 기사
http://media.daum.net/society/affair/view.html
성균관대 본고사 관련기사
http://www.unn.net/News/detail.asp?nsCode=36949
석궁 피습 사건에 대한 의혹 관련기사
http://www.nakorean.com/news/articleView.html?idxno=6146
석궁사건 종결심 관련 내용 포스팅
http://mediamob.co.kr/2bsicokr/frmView.aspx?id=197910
조사는 이정도 까지이고 깔끔하게 김명호 전 교수님의 1인시위 하던 시절 사진으로 마무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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